미국이라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이민 1.5세대다. 내가 미국을 선택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미국으로 왔고 나는 그 흐름 안에서 함께 건너왔다. 그래서 처음 내 머릿속에 있던 미국은 내 경험에서 생긴 이미지라기보다 아버지가 오래 품고 있던 환상에 더 가까웠다.

아버지는 미국을 신용의 나라로 봤다. 메리트의 나라로 봤다. 능력주의가 살아 있는 나라로 봤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실력이 있으면 올라가고 시스템은 적어도 사람을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대놓고 웅변처럼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넌지시 반복했다. 누누이 말하던 그 문장들 속에는 한국에서 바라본 미국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합리적이며 조금 더 기회가 많은 나라라는 믿음이었다.

나도 어느 순간 그 믿음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미국은 크고 강한 나라였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였고 법과 절차가 있는 나라였다. 신용 점수가 있고 기록이 남고 노력의 결과가 숫자로 평가되는 나라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꿈꾸던 미국은 그런 나라였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도 미국은 꽤 완벽한 나라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시스템 속 개인의 체감

하지만 오래 살아보니 알게 됐다. 미국은 강한 나라가 맞다. 아직도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있고 기회도 많고 제도도 대단하다. 그러나 완벽한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거대해서 작은 사람 하나가 그 안에서 느끼는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큰 배는 멀리서 보면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탄 사람은 엔진 소리와 철판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낀다.

요즘 나는 미국이라는 시스템을 볼 때 가끔 생물학의 hypertumor를 떠올린다. 고래는 몸집이 큰데도 암 발생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한다. 암세포가 커지면 그 암 안에서도 또 다른 암이 생겨 기존 암을 무너뜨리는 현상이 있다. 일종의 암 속의 암이다. 거대한 시스템도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너무 커지면 문제 하나가 끝까지 자라기 전에 또 다른 절차와 견제와 이해관계가 그 문제를 덮거나 막거나 지연시킨다. 그래서 겉으로는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안다. 이 거대한 구조가 늘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9·11 이후, 더 강해진 시스템과 더 좁아진 자유

9·11 테러는 나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스스로의 약점을 잔인하게 마주한 순간처럼 보인다. 그 전의 미국은 강했지만 그 강함이 너무 분산되어 있었다. 정보기관과 연방 부서들은 각자 능력은 있었지만 서로의 조각을 완전히 맞추지 못했다. 누군가는 봤고 누군가는 들었고 누군가는 의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미국은 그날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공항 보안부터 정보 공유 체계와 국토안보부 창설까지 국가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미국은 더 유기적이고 더 단단한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전보다 여러 기관이 같은 방향을 보도록 만들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시스템은 더 똑똑해졌는데 사람은 더 자유로워졌을까. 국가는 더 안전해졌는데 개인은 더 가벼워졌을까. 미국은 9·11 이후 분명 더 정교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더 감시하고 더 분류하고 더 관리하는 나라가 되었다. 예전의 미국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라고 말하는 나라였다면 지금의 미국은 가끔 “너는 어떤 위험 요소인가”를 먼저 묻는 나라처럼 느껴진다.

무너지지 않는 이유

그래도 나는 미국을 냉소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이 나라는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실패하면 조사하고 조사하면 보고서를 만들고 보고서가 나오면 제도를 고친다. 물론 그 과정은 느리고 정치적이며 때로는 위선적이다. 하지만 완전히 멈춰 있는 나라는 아니다. 미국의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설계하려는 집요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내가 믿었던 미국은 조금 순진한 환상이었다. 사실 그 환상은 내 것이라기보다 아버지가 먼저 품고 있던 믿음이었다. 나는 그 믿음의 다음 세대였다. 아버지가 바라본 미국과 내가 살아낸 미국은 같지만 다르다. 신용의 나라지만 빚의 나라이기도 하다. 능력주의의 나라지만 출발선이 다른 나라이기도 하다. 자유의 나라지만 두려움 이후 더 많은 문과 검색대를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

구조적 모순과 균열

미국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나는 그 구조 자체가 얼마나 독특하고 동시에 취약한지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선거인단 제도(Electoral College)다. 이 제도는 원래 각 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민심과 결과가 어긋나는 구조적 결함으로 자주 지적된다. 실제로 전체 득표수에서 지고도 대통령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구조 덕분이다. 한순간에 미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가치들—민주주의, 제도적 신뢰, 국제적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가 생각보다 훨씬 쉽게 균열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강하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 나라는 50개의 주가 모여 있는 연합체다. 사실상 50개의 작은 나라들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 가입되어 있는 구조다. 각 주는 문화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지만 국방과 외교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통합된 움직임을 보인다. 정치적 균열이 있어도 그 움직임 자체는 신속하고 강력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가 말한 것처럼 미국의 진짜 비밀 무기는 바로 인재를 끌어들이는 능력이다. H-1B 같은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의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기술을 만들고 기업을 세우고 새로운 산업을 만든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압도적인 자원과 땅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농업, 기술, 금융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 모든 것을 활용해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수익으로 내부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미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버티는 힘이 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50개의 주는 하나로 묶여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 인종 문제, 홈리스 문제,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단순히 부의 격차만이 아니다. 해안과 내륙, 도시와 지방, 공화당과 민주당, 직업과 교육 수준에 따른 분열까지 겹겹이 쌓여 있다. 겉으로는 강한 나라지만 속에서는 균열이 계속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단단한 껍질 안에서 서서히 압력이 쌓이고 있는 것처럼.

인류의 최대 규모, 최대 기간 거대한 실험속에서 – United States of America

그래서 나는 이제 미국을 단순한 이미지로 보지 않는다. 이 나라는 강하기도 하고 동시에 불안정하기도 하다. 이 한 나라 안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화와 인종이 모여 있다. 기회를 주는 나라인 동시에 그 기회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두려움 앞에서는 쉽게 통제를 선택한다. 그 모순이 미국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미국은 완벽한 나라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재설계되는 거대한 실험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실험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그 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 아버지가 믿었던 미국과 내가 경험한 미국 사이의 간극은 실망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그 간극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이 나라를 바라본다. 그것이 이민자로서, 그리고 이 사회의 일부로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7월 4일,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일이다. 1776년에 시작하여 국가로서는 짧은 역사지만, 실험으로서는 긴 시간 동안 250주년을 맞이하는 내일, 앞으로의 250년 동안 미국과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 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